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우리는 주체끼리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상대방이 어떤 행위의 주체자로 보고, 그의 경험이 행위의 동기가 된 것으로 가정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행동 뒤에 숨은 동기를 파악하고, 타인은 우리에게 자신의 동기를 해명함으로써 자아상을 표현한다. 또한 서로의 배경을 터놓고, 의미를 부여한다. 둘은 다양한 경험으로 서로를 얽매여 보고,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함으로써 친밀성을 만들게 된다. 생각뿐 아니라 감정과 소망도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교차점이 많을수록 정신적 친밀성은 높아지게 되고, 소통하게 된다.

주체로서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 교차할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에게도 상대방과 같은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이해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내가 느낀 감정과 상대방이 느낀 감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회적 상상력에 힘입어 타인의 처지에 공감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친밀성이 더욱 두터워지게 된다.
상대방에게 개입을 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만남이 발생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고 개입함으로써 내적 교차점을 느낄 수 있으며 길거리에서 만남들과 같은 거리를 둠으로써의 만남이 있다. 이때 후자의 경우 원래 그러한 관계라면 상관이 없지만 과거에 서로 개입하는 관계였다가 상처를 입고 물러난 후 생겨난 거리감이라면 그것은 존엄성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34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비웃음을 당함으로 존엄성을 훼손당하였다. 또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의 난쟁이들은 스스로 행위를 하고 능력과 기량을 펼치는 것이 아닌 공중을 날아가는 동안에 도구로 사용되어 아무것도 스스로 보여주지 않고 구경을 당하는 것에서 존엄성이 훼손되었다. 그리고 ‘피프쇼’라고 불리는 나체쇼의 여성들은 욕정의 대상이 되었으며, 암스테르담 밤거리의 여성들은 가격표가 붙고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진열되었다. 흥정 가능한 상품이 된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한다. 그녀들은 흥정의 대상이 됨으로써 존엄성이 훼손당한 것이다. 또한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시당하거나 조종을 당할 때 주체로서의 존엄을 잃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들이고 비판적 성찰과 자아상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 있기에 관계 자체를 화두로 던져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관계에서 체험하는 것들에 나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타인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타인이 나를 보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이러한 의식의 소통은 인간끼리의 만남이 갖는 존엄성의 일부분을 다룬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났다. 먼저 (막스와 고철 장수)에서 형사 막스는 릴리와 아벨을 꼬여서 은행을 털도록 유도한다. 막스는 릴리와 아벨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것이다. 여기서 과거에 봤던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이 났다. 트루먼은 세트장 안에서 30년 동안 살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 트루먼이 자신이 방영된다는 사실을 즉, 남들이 지켜보는 삶을 산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트루먼이 되었다면 내가 느꼈던 삼십 년의 모든 감정과 믿음, 상황들이 거짓으로 밝혀짐으로써 허탈감을 가져올 것이고, 바보 취급을 받고 기만당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속임수였고, 조종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인격체로서 무시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존엄성이 파괴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환자에게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의사를 보며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그냥 불친절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엔 저 의사가 환자를 무시하고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환자의 존엄성을 파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불친절한 것이 아니고,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생각의 확장이 되는 계기였다.

나는 여태까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것은 만남에서 단순히 물질적이고, 행동적인 피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작은 것에도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를 하나의 주체로서 인격적으로 대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무슨 일을 하던지 상대방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임상을 배경으로 나온 의사들과 환자와의 관계 사례를 보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방영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기억에 났다.

보통 다른 의학드라마는 능력이 뛰어난 의사가 까칠한 모습으로 환자들은 잘 살릴지 몰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 약간은 눈살이 찌뿌려 졌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다른 메디컬드라마와는 다르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생각에 재밌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이유가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근본적으로 존엄성을 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지만 그중 두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어 보겠다. 엄마, 아빠, 농아인 어린 아들 세 가족이 있었다. 남편은 간질환으로 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고,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아들에게 공여하길 바라는 상황이였다. 정밀검사 후 이식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아내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공여를 하지 않겠다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내의 의견을 바꾸려고 할 것이고, 비난할 것은 예상이 되는 상황이였다. 의료진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비밀유지해 주었다. 아내의 결정엔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고, 강요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료진이 아내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고, 존엄성을 지켜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간질환으로 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아내가 공여자로 적합하다고 나왔다.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아들에게 공여하길 바랬으며 아내는 이러한 사실을 시댁에 비밀로 하길 원했고,

아내의 의견을 존중함으로서 존엄성을 해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 중 하나는 뇌사상태에 빠져 고인이 된 장기기증자에게 시간이 없어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예를 갖추었고, 상황이 정리된 후 빈소에 찾아가 명복을 빌었으며, 유족에게 위로도 해주었다.